걷기, 헤매기
리 카이 청
〈저 너머 텅 빈 땅〉, 2022.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44분 25초.
작가 제공.
〈지상지하〉, 202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32분 27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작지원. 작가 제공.
저 너머 텅 빈 땅
리 카이 청은 아카이브의 방법론을 바탕으로 역사, 이데올로기, 그리고 시간을 초월한 감정에 대한 예술적 연구를 수행해왔다. 리 카이 청은 2017년부터 범아시아적 맥락에서 ‘이동(displacement)’의 사회적·역사적 함의를 주제로 탐구한 것을 시작으로, 사람과 자원의 이동을 야기하는 인간 조건과 지정학적 관계를 살펴보는 연속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 너머 텅 빈 땅(The Shadow Lands Yonder)〉과 〈지상지하(As Below, So Above)〉는 그 네 번째 시리즈 ‘무한열차(The Infinite Train)’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아시아의 접경지였던 탓에 여러 국가의 세력 다툼이 벌어진 만주 지역에 주목하여 식민주의, 국가, 이동, 정체성, 트라우마 등의 쟁점을 살펴본다.
때로 우리의 이동은 복잡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정서적 흔적을 남긴다. 〈저 너머 텅 빈 땅〉은 전쟁과 식민지화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발생한 20세기 초 만주를 배경으로, 일본을 떠나 만주로 이주한 개척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새로운 땅을 일구어 정착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온 이주자들은 역사적·정치적 격랑 속에서 피난민이 되어, 떠나온 ‘조국’에도 새로이 이룩하고자 했던 ‘고향’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돈다. 〈저 너머 텅 빈 땅(The Shadow Lands Yonder)〉은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갈망·개척·떠남·침체·송환·거부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벌어진 심리적 갈등과 정체성의 변화를 재상연한다. 작가는 떠나지도 남지도 못하는 경계의 존재로서 체화한 갈등의 기억과 허무함의 정서가 오늘날 중국의 러스트벨트로서 재정립된 동북 지역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지상지하
〈지상지하(As Below, So Above)〉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날, 만주와 소련 사이 최전방에 위치한 지하 요새에 남겨진 정토진종 본원사파의 군종 승려와 보급병의 대화를 담고 있다. 산과 도시를 가로질러 21㎢에 이르는 지하 요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졌다. 병사와 승려의 대화 주제는 소련군과의 대치 상황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금지된 불교 경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미로 같은 지하 요새에서 어둠 속에 갇힌 그들은 공포와 두려움을 견뎌야 한다. 바깥으로 나서는 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소련의 폭격으로 인해 뚫린 천장에서는 바람소리만이 들려와 더 이상 적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병사는 쉽사리 안온한 어둠 속에서 바깥으로 나서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조차 나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오늘날 전염병으로 인한 물리적 폐쇄와 공포, 갑작스러운 개방이 야기한 혼란스러운 상황과 연결한다. 집단적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보지 못하게 하고 어디로 향하지 못하게 하는지 묻는다.
쉬운 글 해설
저 너머 텅 빈 땅
- 작가 이름 리 카이 청
- 만든 때 2022년
- 보여주는 방식 단채널 영상*, 색깔과 소리가 있는 영상
*단채널 영상 : 1개의 화면에서 영상이 나오는 방식 - 작품 길이 44분 25초
작품 <저 너머 텅 빈 땅>과 <지상지하>는 리 카이 청의 네 번째 프로젝트 ‘무한열차’의 일부입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만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때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역인 만주에서는 수많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로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마음속에 흔적을 남깁니다. <저 너머 텅 빈 땅>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을 떠나 만주로 이동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서 잘 살아내겠다는 희망을 품고 왔지만,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 떠돌아다니는 피난민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만주에서의 꿈이 무너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보여줍니다. 작가는 이렇게 떠나지도 남지도 못한 사람들이 겪은 갈등과 허무함이 오늘날 중국의 동북 지역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지상지하
- 작가 이름 리 카이 청
- 만든 때 2023년
- 보여주는 방식 단채널 영상*, 색깔과 소리가 있는 영상
*단채널 영상 : 1개의 화면에서 영상이 나오는 방식 - 작품 길이 32분 27초
이 작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지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지상지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날, 만주와 소련 사이에 있는 지하 요새*에서 어느 스님과 병사가 나눈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이 거대한 지하 요새는 산과 도시 아래 감춰져 있었습니다.
스님과 병사는 전쟁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미로 같은 지하 요새에서 어둠 속에 갇힌 스님과 병사는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을 견뎌야 합니다. 어느새 뚫려버린 지하요새 천장 바깥에서는 더 이상 적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쉽게 바깥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어쩌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방도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만들어낸 상상 속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스님과 병사가 처한 상황은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과도 연결됩니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때문에 꼼짝없이 갇히게 될 때, 막혀 있던 도시가 갑자기 개방될 때 우리는 두렵고, 공포스럽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무엇을 놓치거나 잃어버리게 될까요?
*요새 :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방어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튼튼한 시설
강동주
〈유동, 아주 밝고 아주 어두운〉, 2023.
김방주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날 까마귀가 떨어트린〉, 2023.
김재민이
〈레이온 공장 달리기〉, 2023.
량즈워+사라 웡
〈팔을 구부리고 있는 소녀〉, 2014.
〈창파오를 입고 모자를 쓴 남자〉, 2014.
〈빨간 우산을 쓴 오피스 레이디〉, 2010.
〈의자를 들고 달리는 아이〉, 2014.
〈양복 차림으로 목 뒤를 문지르고 있는 남자〉, 2018.
〈등을 긁고 있는 일본 주부〉, 2010.
〈고무 대야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주머니들의 모습〉, 2023.
레지나 호세 갈린도
〈누가 그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 2003.
〈사람들의 강〉, 2021-2022.
〈땅은 망자를 감추지 않는다〉, 2023.
리슨투더시티
〈거리의 질감〉, 2023.
리 카이 청
〈저 너머 텅 빈 땅〉, 2022.
〈지상지하〉, 2023.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 울라이
〈연인, 만리장성 걷기〉, 1988/2010.
미라 리즈키 쿠르니아
〈발자취를 쫒다〉, 2023.
이창운
〈공간지도〉, 2023.
프란시스 알리스
〈실천의 모순 1 (가끔은 무엇인가를 만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97.
〈실천의 모순 5: 우리는 사는 대로 꿈꾸곤 한다 & 우리는 꿈꾸는 대로 살곤 한다〉, 2013 .
〈국경 장벽 유형학: 사례 #1부터 #23까지〉, 2019-2021.
박고은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 2023.
새로운 질서 그 후
〈그 후 시티 〉, 2023.
〈둘러보기〉, 2023.